금회 코디네이터(김지희)로서 발제한 제주건축대전 일반공모전의 주제는 "제주생활자: 새로운 공동체 모색" 입니다.
현 시대적 흐름을 두고 지역 공모전을 통해 제주만의, 제주의 특이성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내고자 하였습니다. 주제 해제의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간 중심의 사고에 대한 비판적 측면에서 인류세 담론이 확장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도시 봉쇄' 등 인간 활동을 제한하는 사회적 움직임에 반해 자연(생태계)의 회복 현상을 보면서 인간 이외의 생물에 대한 존엄성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인류세(Anthropocene·人類世)’는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me) 회의에서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공론화된 개념으로, 지각 변동 및 생물종(Specie)의 변화 현상-지질학(생물학)적 개념에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현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두고 학계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새로운 시대라는 용어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멸종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생태계에 미치는 인간의 강력한 영향력, 즉 무분별한 화석 연료 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의 급증 등에 의한 기후 변화, 바다의 산성화, 토양오염과 같은 환경적 변화에 의한 생물종의 멸종을 뜻한다. 본 주제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시선이 아니라 “모든 종의 상생(相生)”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에 의해 종의 다양한 관계를 품고 있는 장소이다. 한라산과 바다, 곶자왈, 오름, 하천(건천) 등 각 고유한 환경을 중심으로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데, 모든 동물과 어류·꽃과 나무·곤충·아주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권을 보존하기 위해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 지정 외에도 관련 기관·단체의 많은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제주는 서로 다른 관계들이 모여 상생하는 장소로서 작동되어 왔으나,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관광산업·인간 중심의 무리한 개발 및 정비에 의해 여러 이해 갈등이 심화되면서 상생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 외의 종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곧 이들이 머무를 거주환경의 소멸을 뜻한다.
제주라는 환경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복원·연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을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건축가의 시선에서 인간과 인간 외 모든 종을 하나의 공동체로 해석하기 위해서 제주에 거주하는 모든 종을 ‘제주생활자(Jeju-Island Dweller)’라는 범주로 묶고, 우리에게 상생이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것인지 혹은 주체를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공동체적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자 한다.
건축가에게는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역할과 더불어 삶에 대한 환경을 제시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이루기 위해, 인간과 인간 외 모든 종의 상생을 바탕으로 천천히 발전될 수 있는 건축적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건축을 사용하는 주체를 인간으로 두지 않고, 인간 외의 종을 위한 건축을 만들면 어떨까?
현재의 건축물에 인간 외의 종을 위한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거나, 특정 종을 위한 새로운 건축물을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미 형성된 건축이 인간 외의 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미 학습된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해체함으로써 인간과 인간 외의 종이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공동체 설정을 통해 탄생한 건축은 제주 건축의 미래 방향을 예측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모든 종의 공동체적 관계를 설정하는 시나리오를 통해 제주생활자의 다양한 상생 방식을 제안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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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12월까지 바쁘게 달려온,
제주건축가회 건축대전 위원회 및 심사위원단,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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