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에서 주최하는 건축공모전인 제주건축대전에 대한 소회를 건네었습니다. 신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 해 동안의 과정을 잘 다져낸 것 같습니다. 에세이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의 건축이야기: 건축적 태도에 관하여
나에게 건축은 거주자의 특정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거주 환경을 만드는 일은 공간 안에 있는 내 몸을 둘러싸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며 이 환경이 어떻게 내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과정이다. 내가 언급하는 거주(居住)는 머무는 행위를 기반으로 내 몸에 체화되는 특정기간의 여정을 말한다. 따라서 나에게 모든 건축은 특정한 거주 환경을 갖추는 일과 같다. 거주자가 인식하는 것과 무의식(전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설계인 셈이다.
크게는 건축적 행위가 형성되는 땅의 위치로부터 출발하여,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해석하고 그곳에 내가 어떻게 자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작게는 건축사 시험의 지문을 분석하듯, 요구 조건들을 수합·정리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발주처(건축주)가 좋다고 느끼는 것과 '좋다'고 학습된 인식의 차이를 구분한다. 현재까지 느낀 건축물 마다의 개성은 함께 건축을 만들어가는 발주처(건축주)와의 설계과정에서 형성되는데, 그들이 진정으로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건축적 환경으로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설계 의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환경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쾌(快)'한 환경으로 지각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건축적 태도이다.
제주생활자라는 시선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는 나에게 중요한 환경이 된다. 내가 건축을 하는 토대이자,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고 고민해왔던 것들을 소진시킬 수 있는 장(場)이다. 제주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은 우리에게 낮게 펼쳐진 풍경(환경)을 제공하고, 제주에서 건축을 하는 행위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주를 해석하고 담아내는 과정에서 각자의 제주다움을 형성한다.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일상적 환경을 제공하는, 제주다운 건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를 하나의 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였다. (사)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에서 주관하는 제주건축대전을 통해 제주라는 영역 내에서 상생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과 건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인간의 거주 환경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많은 생물종 간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들이 결국 제주 안에서 실행되는 건축설계의 밀도를 높여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코디네이터로서 발제한 주제는 '제주생활자: 새로운 공동체 모색'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찾기 위한 여정
제주라는 영역 내에서 공동체의 개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익숙하게 학습된 인간 중심의 사고를 중지(epoche)하고, 나의 일상 혹은 현재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짧은 기간 동안 새롭게 훈련해야하는 관점 속에서 작품 응모자들의 숙고와 노력이 얼마나 깊을지 알기에, 금회 제주건축대전은 심사 횟수를 1차례 추가하여 온라인 심사와 오프라인 공개 심사로 진행하였다. 작품 응모자들의 생각과 의도를 보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읽어내기 위함이었다. 총 60팀의 응모 중 39팀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제주라는 환경 안에서 어떠한 것들이 문제라고 인식되고 필요한지, 이를테면 바다와 오름, 습지 등의 환경과 인간과 생물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건축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어졌다. 다양한 종 간의 연결과 회복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 즉 보전(保全)에 대한 다양한 건축적 방식이 제안되었다.
작품접수가 완료된 10월 10일부터 공개심사가 완료된 11월 8일까지 심사위원 제주대학교 이용규 교수님과 일본 타토건축 시마다요 건축가님의 노고는 매우 컸다. 블라인드로 진행된 심사에서 두 분의 심사위원의 의견은 많은 부분 일치하였다. 면밀하게 한 작품씩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치가 이루어졌다. 내·외부 경계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일상 건축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돋보이는 시마다요 건축가와, 건축을 통해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는 고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용규 교수님의 관점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공개심사이다. 특선 이상의 후보로 선정된 5개 팀의 발표를 듣고 심사위원과 직접 질의응답하는, 각자의 생각과 해석 방식을 나누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다만, 공개심사에서 더 많은 작품 응모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과 질의응답 시간이 약 15분 정도로 짧게만 느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앞으로 더 많은 미래의 건축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기대하며,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제주 건축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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